남정근 작가는 조각을 하나의 연극적 구조로 바라본다. 그에게 형상은 서사를 전달하는 인물이 아니라 무대 위에 놓인 존재이며 어떤 관계가 발생하기 직전 혹은 사건 이후에 남아 있는 정적과 긴장을 조각으로 구성하는 데 관심을 둔다. 작가에게 조각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관람자의 시선과 거리, 각도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장면으로 재배치되는 살아 있는 무대이며 그 앞에 선 관람자가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겹쳐 보도록 유도한다.
〈머무는 사이〉는 도시 속 인간과 타자의 관계를 '머묾'이라는 상태로 사유하는 조각이다. 비둘기는 도시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는 존재이면서도 인간과 늘 미묘한 간격을 두고 공존하는 타자인데 이 작품에서는 비둘기들이 인물의 머리와 어깨, 손, 발치에 자연스럽게 올라앉아 있다. 눈을 감은 채 내면으로 침잠한 인물 곁에 비둘기들이 경계심 없이 다가와 머무는 이 장면은 서로를 소유하거나 길들이지 않으면서도 같은 공간을 조용히 나누는 공존의 순간을 보여준다. 작품은 공원이라는 열린 환경을 오가는 시민들과 함께하며, 정지된 조각이면서도 매 순간 다른 관계를 생성하는 살아 있는 장면으로 작동한다.